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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북리뷰] 역사에 기록된 걸작, 운수 좋은 날 - 한진건

by 몽환책소개사 2023. 4. 21.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줄거리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 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첫 번에 삼십전, 둘째 번에 오십 전, 재수가 옴 붙어서 십 전 짜리 백통화(구리와 니켈로 만든 동전) 서 푼, 다섯 푼이 손바닥에 떨어질 때 김첨지는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이 만큼의 돈이라면 컬컬한 목에 모주 한잔 적실 수 있으니와, 아픈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럭거리기는 벌써 한 달 남짓이 지났다. 김첨지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면 재미 붙여 더 온다는 자신의 신조를 믿고, 약 한 첩 지어주지 아니하고 있다. 반듯이 일어나기는커녕 갈수록 증세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으며, 조밥도 잘 먹지 못하는 아내에게 구박질을 해보지만 아내는 더욱더 설렁탕이 사흘 전부터 먹고 싶었다고 조른다. 야단을 쳐 보지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이제 이 정도의 운수가 따라주어서 돈을 벌었으니, 아픈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 사 줄 수 있을 뿐 이언정, 세 살배기 아들에게 죽도 사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첨지의 운수는 그치지 않았다. 뒤에서 "인력거!"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며 뒤 돌아보니 동광학교의 학생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있었다. 학생은 다짜고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우장에 진흙을 찰박거리며 가기가 싫은 것이 아니라, 아내의 오늘은 일찍 돌아와 달라는 부탁이 맘에 걸렸다. 하지만 학생이 일원 오십 전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자, 김첨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얼굴로 학생을 인력거에 태웠다.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김참지는 일 원 오십 전이라는 큰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김참지는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돌아가기 싫었고, 근처를 빙빙 돌며 다시 손님을 찾았다. 다시 손님을 찾은 김첨지는 실랑이 끝에 오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조한 마음이 닥쳐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비가 내리는 우중 충충한 하늘에, 김참지는 집으로 다시 향한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진다. 이 누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다가온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라. 그는 불행을 보기 싫은 마음에 시간을 늘리려고 버르적거리다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를 만난다. 김참지는 선술집에 들어가, 공포를 회피하듯 막걸리를 마시며 격기를 부렸다. 일 원치를 다 먹고서야 김참지는 일어나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집에 다다랐다. 김첨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엄청난 정적, 그리고 이 침묵을 깨트리는 빡빡한 젖 빠는 소리는 더욱더, 어쩌면 김참지가 이미 알고 있었던 불행을 더 키웠다. 

  방 문을 열자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찌르며, 아내가 고요히 누워있었다. 김첨지는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라 해보고, 머리를 흔들며 호통하는 김첨지의 말끝엔 목이 메어있다. 그리고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죽은 이의 얼굴을 적시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개요

1924년 한진건 작가는 잡지 개벽에 운수 좋은 날을 발표했다. 이때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의 서민들의 삶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복선반전, 그리고 한진건 작가의 필력이 어우려저 지금까지 회자되는 한국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또한 마지막 대사,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는 독자들에게 굉장한 여운을 주며 이 책을 세상에 알리는데 도와주었으며, 현대에는 활발한 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 주야장천, 허장성세, 선술집, 오라질 놈 등 알고만 있던 단어들을 실사용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오늘 다시 읽어보니 왜 지금까지 회자되고, 교과서에 실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읽고, 걸작이 걸작이라 불리는지 다시 한번 느낀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라도 아직 안 읽어보았다면 꼭 한 번은 읽어보길 추천한다. 위 줄거리에서 다루지 못한 복선과 정말 정교하게 짜인 문장구조들이 깊은 여운과 감정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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